음식을 받아 맛을 내놓는 해석 불가능한 블랙박스
미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다. 컴퓨터공학처럼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호한 행위를 컴퓨터공학자의 시선으로 재정의해 보자. 미식이란, ‘맛’을 판정하는 거대한 블랙박스 함수를 탐구하는 행위다. 맛 자체도 사실상 무한한 어휘 집합이지만, 복잡성 제어을 위해 음식이라는 입력을 받아 f(음식)
‘맛있다’ 또는 ‘맛없다’라는 이진(Binary) 출력을 내놓는 함수라고 생각해보자.
이 함수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로 한 사람의 미각과 뇌의 인지 체계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함수의 출력값만 알 뿐, 그 내부 로직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의 미각은 나를 위한 AI 모델이다
이 블랙박스는 평생에 걸쳐 수집된 ‘맛’ 데이터를 학습한, 나만을 위한 초개인화 AI 모델과 같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특정 음식에 대한 판단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AI 연구의 오랜 난제인 ‘설명가능성(Interpretability)’이 부재한다. 내 안의 모델이 왜 이런 판정을 내리는지, 어떤 가중치를 통해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맛있다’는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다.
물론 모든 공학자가 이 설명가능성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 원리를 파고드는 대신, 압도적인 양의 학습 데이터로 밀어붙이면 인공지능의 성능과 정확도는 어쨌든 올라간다. 더 단순하고 효과적인 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신 AI 연구의 거대한 흐름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미식의 세계로 치환하면, 깊은 사유 없이 방대한 경험을 통해 ‘맛있다’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집중하는 미식가와 같다. 그리고 이것 역시 그 자체로 훌륭한 접근법이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 시스템과 같은 고전적인 분야의 연구자로서, 나는 이러한 설명 불가능성을 용납할 수 없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무슨 출력을 내뱉을지, 그리고 그걸 왜 내뱉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시스템을 개선하고 보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나는 그 블랙박스를 열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나의 미식은 ‘역공학’이다
그렇다면 나의 미식은 무엇인가? 나는 이 블랙박스를 ‘역공학(Reverse Engineering)’하는 모든 과정이라 정의한다.
어떤 음식을 맛보았을 때, 단순히 ‘맛있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왜’ 내 안의 모델이 이런 판정을 내렸는지 그 논리 회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단맛에 반응하는 나의 미뢰가 타인과 어떻게 다른지, 감칠맛을 인지하는 뇌의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고드는 행위다.
이해는 취향을 넘어선다. 역공학에 성공한다면, 내게 맛없는 음식이 어떤 미각 회로를 가진 사람에게는 왜 맛있는지, 내게 맛있는 음식이 다른 이에게는 왜 그렇지 않은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취향 차이’라는 편리한 말로 뭉뚱그려온 현상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장 공학자다운 탐미(耽美)의 방식
물론 이 접근은 ‘Computational Gastronomy’와 같은 학문 분야와 맞닿아 있다. 내가 이 분야의 지식을 직접 창출하는 학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공학자로서 나만의 언어로 ‘맛’이라는 현상을 해석하고, 그 즐거움을 해당 분야의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내지는 나아가 나만의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공학자다운 탐미(耽美)가 아닐까.